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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덧댐의 법칙 "땜빵"의 중요성
    수학과 공부이야기 2019. 10. 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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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 물리학교수님의 '덧댐'의 중요성 인용합니다. 물리학 뿐 아니라 수학공부에도...

    <덧댐의 중요성>

    1. 학부 학생들에게 주는 조언 중 중요한 것 하나. 그것은 "덧댐"의 중요성이다. 다른 말로는 땜빵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학생들은 물리 공부를 하다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수학에서 막히면, 자신의 기초실력이 부족함을 절감((切感)하며 다시 저학년이나 고등학교 때 배운 과정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건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2학년 때 역학을 배우다가 막히면, 1학년 때 일반물리학이나 미적분학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그 책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학 진도는 정신 없이 나가니 결국 뒤로 돌아간 학생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더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2. 그래서 본격적인 기초 공부는 방학 때 하고, 학기 중에 공부할 때는 "덧댐의 원칙"을 사수하라고 알려준다. 2학년들에게 역학이 어려운 것은 미분방정식을 배우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미분방정식이 나오고, 더구나 그 미분방정식이라는 게 2계미분 방정식이니, 미적분학에서도 잘 안 다루는 것이라 따라가기가 힘들다. 게다가 비동차 미분 방정식도 한번씩 다뤄야 하니 그 고통을 뭘로 다 표현할까. 이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수리물리학 교과서든, 공업수학 책이든, 아니면 수학 미분방정식 기초든 하나 펴서 딱 해당되는 곳을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이걸 <덧댐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부한 것은 반드시 노트 정리를 해두라고 학생들에게 일러둔다. 모든 공부는 기록으로 남겨야만 한다. 그게 훗날 나 자신의 공부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3. 역학에서 강체를 다룰 땐 텐서가 등장한다. 대개 교과서들에서 텐서에 관해 잠시 언급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2학년 학생들은 다시 나락으로 빠져든다. 듣도보도 못한 텐서를 바로 써먹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 이런 경우에 다시 필요한 게 덧댐의 원칙이다. 이 경우에는 학생 혼자서 하기 힘들니까, 강체를 시작하기 전에 <A crash course on tensors>라는 장을 하나 끼워 넣는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역학에 필요한 직교 텐서의 정의와 간단한 연산을 먼저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힘들어하지 않는 건 아니다. 새로운 개념은 익히기가 늘 어렵다. 그러나 그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낯설어서다. 낯선 걸 이기는 방법은 많이 대하는 거다. 교수는 학생들이 빠른 시간 안에 낯선 걸 이겨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숙제와 연습 풀이 시간이다.

    4. <덧댐의 원칙>은 꼭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게 이론물리학자들이 처음부터 수학을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이론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수학 공부를 했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하이젠베르크. 1925년 봄, 하이젠베르크는 알레르기가 심해져서 눈을 뜨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독일 북쪽 헬골란트라는 섬에 가서 3주 동안 요양도 할 겸, 연구도 함 겸, 겸사겸사 여행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참으로 희안한 걸 발견했는데, 거리를 나타내는 양과 운동을 나타내는 양이 서로 교환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x 곱하기 p가 p 곱하기 x와 달랐던 것이다. 이 당시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5. 괴팅겐으로 돌아온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발견한 걸 막스 보른과 의논했는데, 보른은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게 행렬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브레슬라우 대학(지금은 폴란드 땅)에서 공부하면서 운좋게도 행렬을 잘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덕에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게 행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192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해석학은 잘 알았어도 선형대수는 잘 몰랐다. 그후에 하이젠베르크가 행렬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가 보른과 요르단과 같이 쓴, 그 유명한 <Dreimaennerwerk>에서 "행렬역학"이라는 말로 양자역학을 설명한다.

    6. 1970년대 초, 엇후프트가 양밀즈 이론에 바탕을 둔 양자장론을 재규격화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때 쓴 방법이 그 당시로부터 이십 년 전에 파인만이 개발한 모함수 적분이었다. 당시에 이미 유명해졌던 와인버그 말로는 자신은 그때까지 그 모함수 적분 방법을 잘 몰랐다고 했다. 그러니 그도 그걸 따로 공부했고, 그 뒤로 이 방법을 이용해 연구도 많이 했다. 아주 두꺼운 양자장론을 쓴 장-쥐스땅도 지금은 그런 책을 쓸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자장론을 다룰 줄 알지만, 1970년대 미국 SUNY를 방문하는 동안 이휘소 교수에게서 이 모함수 적분 방법을 배웠다. 이 사람들 모두 기초부터 시작해서 이 모함수 적분을 배운 게 아니라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배운 후, 나중에 하나씩 다져나간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바로 논문을 쓸 수 있겠는가.

    7. 물리학에서 수학이 워낙 많이 쓰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수학 공부를 꾸준히 하면 좋지만, 물리 공부하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그게 쉽지가 않다. 그런데 실제로 물리학자들이 수학의 전 분야를 처음부터 차곡차곡 배운 게 아니라 연구에 필요하면 그때 배우기 시작해서 능수능란하게 다룰 때까지 익히는 것이다. 겔만도 그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가 SU(3) Lie 군을 써서 쿼크 이론을 세웠지만, 수학적으로 예쁘게 다듬은 건, 그가 파리에 다녀 온 이후였다. 내 생각에는 그가 그곳에서 E. Cartan이 다듬은 Lie Group을 익혔음에 분명하다.

    8. 정리하면, 물리를 공부하다가 수학이 막힐 때 좌절하지 말고 이 <덧댐의 원칙>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원점으로 되돌아가면, 좌절은 더 심해지고,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 그리고 이 덧댐의 원칙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거기에 필요한 수학을 익혀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준다.

    이론물리학자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다음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연구하면서 배운 물리와 수학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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