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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리학교수가 들려주는 <수학과 물리학을 잘하는 몇 가지 방법>
    수학과 공부이야기 2019. 10. 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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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 교수님의 수학 물리학 잘하는 법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체득하신 방법입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는데, 혹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수학과 물리학을 잘하는 몇 가지 방법>
    이론물리학을 30년 넘게 했으니 수학과 물리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학생들에게 조금은 이야기해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처음부터 수학과 물리학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수학과 물리학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이야기부터 하면 수학을 못한다고 좌절하는 사람에게 조금은 꿈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물리학에 관심이 있어 과학반 활동도 열심히 했고, 공부도 잘하는 축에 들었던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무척 잘해서 학생 대표로 상도 받고 했지만, 초등학교 때 이야기야 딱히 할 필요가 없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였다.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간 해는 1979년이니, 대한민국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였다. 박정희가 암살당했고, 전두환이 정권을 탈취한 12.12 사태가 있었던 해다. 그때 고등학교란, 대개는 폭력적이었다. 내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께서 내가 중2 때부터 계속 편찮으셨다. 아버지는 군인이시라 집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서 부대장을 하실 때였으니[1], 집에서 공부하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금은 가장 민주적이고 훌륭한 학교로 변모했지만, 그때만해도 폭력적인 학교였다. 이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내 일 년 선배였던 유하 감독이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에 그다지 과장 없이 잘 나온다. 난 그런 학교가 그땐 정말 싫었다. 그러니 공부에 흥미가 생길 일도 없었다.

    그 당시 감수성이 좀 예민한 학생들이 그렇듯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는 문학에 빠져 들었다. 그 중에서도 시에 푹 빠졌다. 없는 용돈에 시집도 한번씩 사보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있던 문예부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는데, 그때 국어 선생님 두 분께 은혜를 입었다. 두 분은 내가 쓴 시를 보며 교정도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셨다. 그중 한 분은 소설가로 등단하신 소설가셨다. 두 분께 시를 배우며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언어로 창조해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축약되고 단 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시인이란 세상의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숨겨진 의미와 본질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두 분은 시에서 감정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 시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처음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다가 만난 시인이 로트레아몽이었고, 김수영이었고, 엘뤼아르였다. 특히나 로트레아몽의 시는 너무나 강렬해서 몇 구절들은 내 정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듯 했다. 두 분은 졸업 후에 문학을 하라고 조언을 하셨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러다 기독교에 너무 지나치게 빠져들고 말았다. 역설적이지만, 내가 쓰던 시와 기독교는,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내적해서 영이 되는 관계였다. 그 탓에 시와 조금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어쩌다보니 물리학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두 국어 선생님은 내가 문학을 하지 않은 걸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다. 두 분께는 몹시 죄송했지만, 나는 그렇게 시를 떠나 물리학으로 왔다. 그리고 물리학을 하면서 다시 한번 기독교, 아니,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 역시 물리학과 교회는 역설적이게도 내적하면 영이 되는 관계였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시에만 빠져 지냈으니, 다른 공부는 할 턱이 없었다. 방학 내내 방에 처박혀서 시만 쓴다고 1, 2주를 보낸 적도 있으니, 뭔 공부를 했겠는가. 그러니 수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 수학 실력은 점점 내려가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닥을 쳤다. 2학년 말에 드디어 수학 시험 점수를 영점 받는 사태가 났으니 그 당시 내 수학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는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1982년에 인하대 물리학과를 입학했을 때, 인하대 교수님들은 야간대학 강의까지 합해서 스무 시간 넘게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무슨 과목이든 잘 배웠을리 만무하다. 예를 들면 미적분학 강의는 독일어의 Vorlesung이라는 단어와 똑같았다. 담당교수가 한 시간 내내 앞에서 미적분학 책을 읽으셨다. 그래도 1학년 때, 그리고 2학년 때까지 난 학교 공부를 그럭저럭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내가 마음 먹고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2학년 말 겨울방학이 시작하면서였다. 3학년이 되어서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다섯 시에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까지는 거의 두 시간. 새벽에 나와야만 가는 길에 공부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에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학교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배우는 수리물리학은 시간 강사가 와서 가르쳤다. 그분은 처음으로 숙제라는 걸 내줬다. 교재는 수리물리학 교재 중에서 학부생에게는 어렵기로 악명 높은, 아프켄이 쓴 교재였다[2]. 그때부터 나는 틈 나는 대로 고등학교 수학, 미적분을 다시 공부하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프켄에 나오는 문제들을 혼자서 풀 재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한 문제 푸는 데 하루종일 걸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2학기가 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조금만 고민하면, 그 어렵다던 문제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건 내게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결국, 나중에는 이렇게 공부한 덕에 독일 가서 영어도 변변하게 못하던 내가 독일 친구들에게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루는 독일 친구 둘이서 칠판에 문제 하나를 적어 놓고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보니 그건 복소 적분에서 나오는 나머지 정리(Residue theorem)를 이용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 문제를 내가 대신 풀어줬더니, 그때부터는 내가 하는 말을 다들 귀담아 듣기 시작하더라. 그때 형편 없던 내 영어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나는 수학과 물리학 공부를 남들보다 정말 늦게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늦게 공부했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뒤처진 자가 앞선 자를 따라가려면, 앞선 자보다 조금 더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건 값을 치루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던 시간들의 값 말이다. 값을 치룬다는 것은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다. 틈이 날 때마다 공부를 해야 했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걷지 말고 뛰어야만 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얻은 경험은 지금 늦었다고 수학이나 물리학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수학과 물리학을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잘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공부는 우선 혼자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면 조금은 빠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그 가야 할 길을 누가 대신 걸어가 줄 수는 없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고 혼자서 읽기 시작하여야 하고, 읽은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노트를 작성해야만 하고, 책에 나오는 문제를 내손으로 직접 풀어야만 하는 것이 수학과 물리학 공부다. 물론 그러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지만[3], 꾸준히 하다보면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로 다시 되돌아오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처음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공부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다. 그건 졸음이다. 공부만 하면 졸리기 시작하는 것, 그건 오랫동안 공부를 쉬었다가 다시 공부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나는 이게 쓰지 않던 머리가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좋은 현상이라고 여긴다. 그동안 쓰지 않던 에너지를 머리가 소모하기 시작하니, 졸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그동안 때가 덕지덕지 앉은 뉴런에 불꽃이 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4]. 그러나 졸음이 쏟아진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거나 집으로 가면 안 된다. 그저 앉은 자리에서 엎어져서 자더라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면 잠자리가 불편해 오래 못 자기 때문에 한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깨기 마련이어서다. 여기서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게 관건이다. 이 부작용은 제법 오래 가니까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부터 책의 내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당신의 뇌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가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길면 육 개월이다. 이건 내 경험이기도 하고, 학생을 가르치면서 얻은 경험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 이르면 자가발전을 시작하고, 자체진화를 조금씩 시작한다.

    두 번째는 노트 정리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혹시 강의를 들으면서 혼자 공부하는 경우는 노트 작성을 다음처럼 하면 좋다. 노트의 한 페이지는 내가 공부한 걸 쓰고, 다른 한 페이지에는 강의 때 들은 걸 다시 정서하는 것이다. 강의 때 작성하는 노트로는 연습장을 써라. 그리고 교수가 하는 말은 모두 적어라. 교수가 한번씩 하는 농담까지도. 이건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강의시간 내내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또렷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낫다는 옛말이 맞다는 걸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습장에 적어놓은 걸, 노트의 다른 한 면에 정서하면서 복습을 하라. 그러면 노트의 한 면은 내가 공부한 내용이 적혀있고, 다른 한 면은 교수가 설명한 내용이 적혀 있으니,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 나는 대학원에 다니는 내내 강의노트를 이렇게 작성했다.

    세 번째는 노트 정리를 한 다음, 복습을 해야 하는데, 복습은 다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혼자서 생각나는 대로 모든 과정을 다시 유도해보는 것이다. 증명 과정이든, 계산 과정이든, 아무 것도 보지 않고, 백지를 꺼내 다시 작성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그리고 모르는 부분을 다시 공부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늘 백지를 꺼내 들고 배웠던 내용을 혼자서 유도해보곤 했다. 그러면 일단 시간이 잘 가기 때문에 서울까지 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섯 번째는 무슨 과목이든 책 한권만을 봐서는 부족하다. 책 한권이란, 거기에 저자만의 생각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고, 그가 이해한 수학이나 물리학을 설명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저자의 생각도 살펴보는 게 좋다. 그런데 이미 교재 하나에 익숙하다면, 그 다음 교재를 보는 건 훨씬 더 수월하다. 이 과정은 의외로 재미있는데, 똑 같은 내용도 서로 다른 두 설명으로 읽으면 이해가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 내용을 내 말로 적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여러 책을 보는 게 좋다. 이건 내가 강의 준비할 때 늘 쓰는 방법이다.

    여섯 번째는 어려운 문제를 다뤄보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어려운 문제란 알고 보면 어렵다기보다는 낯선 문제다. 낯선 걸 극복하는 방법은 가능하면 많이 대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건 친구를 새로 사귈 때와 비슷한 과정이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대개 여러 개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들이지만, 결국 책에 나오는 문제란 학생의 이해를 도우려고 저자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다.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다시 교과서나 노트로 돌아가서 그 문제에서 요구하는 개념이나 식을 다시 공부하고 혼자서 유도해보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결국 그 어려운 문제를 여러분이 직접 풀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이때 엄청난 희열도 같이 찾아온다. 그 희열을 맛보다 보면 여러분도 서서히 수학과 물리학에 중독되어가는 걸 느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 때 수학의 다양한 내용을 접하는 건 몹시 중요하다. 단순히 어렵다고 빼버리면 학생들이 그 내용을 접할 기회조차 빼앗기는 셈이다. 차라리 시험 문제를 쉽게 내되 좀 더 많은 내용을 접하는 게 좋다. 새로운 개념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서 여러 번 접하다 보면 결국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몇몇 페친들에게 약속한 것이 있어서 내 경험에 비추어 수학과 물리학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은지 적어봤다. 그러나 이건 순전히 내 경험에서 얻은 것들이라 일반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결국은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적당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첫 발을 내딛기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는 내 조언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여기에 적어 놓은 내용은 강의할 때 종종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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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버지의 전공이 방공관제였기 때문에 근무하시던 곳은 늘 높은 산 꼭대기였다.
    [2] 수리물리학 교재는 많지만, 여전히 아프켄만한 교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휘소 박사가 미국에서 다닌 첫 대학교에 교수로 있던 사람이 아프켄이었다. 아프켄 교재에는 주옥 같은 문제가 많이 나온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교재를 계속 개편하고 있는데, 역시 교재가 점점 안 좋아지는 건 아닌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3] 이건 주화입마와 비슷하다. 그래서 한번씩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지만, 정말 고민하다보면 다시 제 길로 돌아오니 이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4] 이건 순전히 내 상상이지 과학적으로 검증된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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